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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Babylon / 바빌론 (2023)

by 플루언스정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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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빌론이라고 하면 여러 의미가 있다. 먼저 지리적 의미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위치한 인류의 문명 초창기에 관개 농업을 시도했던 아주 비옥한 땅. 그리고 성경에 있는 유대인들의 관념 속에서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도시, 그리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어릴 때 자주 듣는 오만한 인간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서 높은 탑을 쌓다가 천벌을 받고 그로 인해서 서로의 언어가 달라져서 지금처럼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가담항설적 의미. 그리고 과거에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의 수도로 불리던 역사적 의미까지 "바빌론"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흘러들어와 있다. 그리고 바벨탑은 그러한 바빌론의 위엄과 위험, 그리고 욕심이 집약되어 있는 심벌이다.

 

2.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바빌론은 매스 미디어의 중심지,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트렌드 세터로 아주 명확한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가 되었다. 넬리 라로이는 바빌론을 동경하는, 바빌론에서 거주하고 싶은 욕망을 지닌 사람. 잭 콘래드는 바빌론의 중심지에서 바빌론을 이끌어가는 사람. 매니 토레스는 성공에 대한 욕망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목표가 확실한 사람과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현실에 머물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과거의 혁명가 사이 그 어딘가에서 방황을 하는 일반적인 사람을 묘사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세 사람이 동종업계에서 만나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닳아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3.

 이 영화의 시작은 강렬하다. 원초적인 본능이 집약되어 있는 파티. 그리고 그 파티에서 누구나 동경하는 인물, 그리고 동경받는 인물이 되고 싶은 한 사람,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이끌려서 파멸인지, 성공인지 모르는 그 뜨거운 길에 몰려서 단지 발이 아프고 길이 있기 때문에 전력으로 달리는 한 사람, 그들은 모여서 바빌론이라는 성지를 만들어 나간다. 시대가 바뀌면서 서로의 역할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며, 거기에 적응하고,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얼굴이 나오면서 과거의 혁명가는 점점 비루해진다. 아니 비루해진다고 "느낀다".

 

4.

 이 영화는 영화의 발전 과정을 토대로 "사람은 어떻게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가."를 이야기한다. 사람은 이름을 남겨서 영원불멸해진다. 초창기의 영화는 영상을 모두 촬영을 하고 대사를 장면 사이사이에 자막으로 끼워 넣는다. 배우들에게는 좋은 표정과 제스처의 비장함으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세월이 흘러 영상과 소리를 같이 담을 수 있게 되니, 그 신선함에 사람들은 소리를 찾는다. 영상은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표현 방식이고, 소리는 색다르다. 즐겁다. 그래서 배우들이 음악에 맞춰서 율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르가 영화가 되고, 그 과정에서 배우들은 점점 졸아든다. 노래와 음악이 배우를 잡아먹는다. 이제는 좋은 표정연기보다도 누가 어떻게 율동을 하는지 노래와 율동이 페어링이 잘 되어 있는지에 관심이 몰린다. 그러면서 과거의 명배우들, 표정과 제스처로 분위기를 압도하고 극을 이끌어 나가면서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들은 서서히 말라비틀어진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영화란 좋은 연주자의 연주를 극장에서 좋은 스피커를 통해서 듣는 콘서트가 되었다. 이제는 배우라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할 때, 극적으로 배우들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하지만 예전처럼 좋은 표정과 좋은 제스쳐로 비장함과 웅장함을 표현하는 것과 더불어 이제는 나의 목소리가 곧 음악이 된다. 이제는 연기자의 좋은 연기와 연기자의 좋은 발성, 그리고 필요에 의해 재생되는 배경음악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삼두룡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잊혀 간다.

 

5.

 혁명가는 꿈을 먹고 산다. 그 꿈은 본인이 보고 느낀 것들을 기반으로 자리 잡아 서서히 뿌리를 내려가고 줄기를 뻗어간다. 하지만 혁명이 완수되고 나면 더 이상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혁명가는 스스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성공하면, 성공한 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고통스럽게 다시 한번 노력을 해야 하고, 고통스럽게 다시 한번 배움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혁명가의 고고한 자존심과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렇게 시대에서 잊혀 간다. 혁명가라고 해서 필멸자가 불멸자로 변화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스스로 쪼그라들어서 잊혀간다고 느낀다.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 [기록]에 의해서 잊혔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혁명가들은 영생을 얻는다. 영화에서 콘래드가 기자를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를 볼 때, 필자는 아킬레우스가 왜 전쟁에 참여해서 단명하는 대신, 명성을 얻고자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혁명가는 화석이 되어서 영원히 살아간다. 후대에 혁명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존재하지 않았는지 실존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질 때 혁명가는 그의 발자취로, 족적을 보여주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길을 안내해 준다. 마치 우리가 화석과 발자국으로 존재에 대한 실존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말이다.

 

6.

 실존하는 영원한 바빌론은 없지만,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바빌론의 이야기가 수많은 세대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매스 미디어의 초창기에 족적을 남긴 대선배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자, 후세대에게 잊혀 가는 대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고대에서 현대로 흐르는 아주 아름다운 은하수를 본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바빌론은 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 바빌론(Babylon)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한다.

 

7.

 사실 이 글은 바빌론 영화를 영화관에서 개봉한 달에 보고, 작성해 두었던 바빌론 리뷰글을 다시 다듬은 글이다. 영화 바빌론을 한번 더 보고 나서, 서서히 잊히던 그 당시의 느낌을 다시 한번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영화 바빌론에 대한 리뷰글을 한번 더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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