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시즌 기아 타이거즈 개막 2연전 감상문
3월 말. 겨울과 봄,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시기. 봄을 시기하는 추위라고 해서 꽃샘추위라고 부르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막상 시즌이 시작하면 해체하라고 욕하면서, 비시즌에는 야구 언제 시작하냐고 변덕스러운 마음을 표현하는 야구팬들에게 야구 개막이란 봄처럼 싱숭생숭하면서 아지랑이 같은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배신감도 커지는 법인지라, 항상 야구를 볼 때, 성적에 대한 기대감은 잠시 접어두고 그저 드디어 야구를 시작하는구나라는 기쁨만 가지고 야구를 시청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개막 2연전에 대한 감상문을 작성하려고 한다.
1. 타순
이범호는 개막하기 전, 김도영은 3번이 어울린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 말은 박찬호, 최원준이 테이블 세터에 고정되고, 나성범, 최형우, 위즈덤이 4번부터 6번에 들어가야한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생산성을 비롯한 다양한 측면에서 진짜로 김도영이 3번에 나왔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까 김도영을 2번에 집어넣는 상식적인 타순을 선보였다. 그리고 당연하게 박찬호가 1번에 나오는 아집도 잘 보았다. 사실 타순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직 2경기밖에 하지 않았고, 원래 봄에는 타선의 힘보다는 투수력으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법이니까.
2. 양현종
하지만 양현종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기본적으로 모든 투수들은 포심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면 은퇴를 하는게 맞다. 브레이킹 볼, 그러니까 변화구를 얼마나 잘 던지든, 포심이 의미가 없어지면 브레이킹 볼들도 같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속이 잘 나오는 투수든, 그렇지 않은 투수든, 포심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할 때는 결국 포심으로 들어가 주어야 한다. 그 포심이 정타가 되든 안되든, 홈런을 맞든, 범타가 되든,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막말로 포심이 맞는다고 해서 모두 홈런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2차전에서 양현종은 권희동을 상대로 포심을 제대로 던지지 않았다. 물론 권희동은 나름대로 펀치력도 있는 타자이고, 선구안도 꽤 좋은 타자다. 아니 선구안이 좋다기보다는 존 저지(구종이 스트라이크로 들어오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능력)가 좋은 타자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이런 선수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존을 공략하는 게 우선이다. 속아주겠지라는 전형적인 회피형 마인드로는 투구 수만 늘어날 뿐, 실질적으로 카운트 싸움이나 수싸움에서 도움이 될 수 없다. 내 포심이 컨디션이 좋고 안 좋고, 내가 자신감이 있고, 없고랑은 무관하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양현종은 권희동을 피해 갔다. 그리고 그다음 타자 서호철에게는 보란 듯이 포심을 던져댔다.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속칭 구속과 구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타자에게 지고 들어간다면 어떤 구종을 던지든 타자를 잡아낼 수 있을까? 필자는 TV로 야구를 보는 것보다, 경기장에서 야구를 보는 걸 좋아한다. 왜냐면 TV에서 나오지 않는, 그러니까 TV를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기백"이 경기장에서는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타자를 무조건 잡아야한다. 나는 이 타자에게 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객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투수에게 그 정도 투쟁심은 있어야 한다. 피하기만 하는 투수에게 능구렁이 같은 피칭을 기대할 수 없다. 투수는 투쟁심을 잃는 그 순간이 투수 생명이 끝난 거다. 양현종이 신진급 선수였을 때, 양현종에게 느꼈던 "기백"이 어제 경기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저연차까지 갈 것도 없다. 2017년도에 양의지를 상대하던 그 "기백"이 2025년도 양현종에게는 없다.
개인적으로 양현종은 류윤김에 비해서 포텐셜이나 어빌리티가 많이 부족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의 실력차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기백", 즉 투쟁심이 양현종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제 경기에서 양현종은 그 "기백"을 잃어버렸다. 아니 사실 몇 년 전부터 그래왔었다. 단지 그걸 능구렁이 같은 피칭이라고 포장했을 뿐. 나는 다시 양현종이 기백을 찾았으면 좋겠다. 대투수면 대투수다운 기백을 다시 한번 보여주길 바란다.
3. 홍종표
김규성이나 박민같은 선수들에 비하면 홍종표가 가지고 있는 툴들이 좋은 건 알겠다만, 기아가 홍종표가 없으면 내야 백업이 전멸해 버리는 팀도 아니고, 굳이 홍종표를 이 악물고 써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이것도 나름대로 지연이라고 봐야 하나? 논란거리라고 생각해서 24 시즌 내야 백업 1번이었던 선수를 뒤도 안 보고 코시 엔트리에서 제외해 버렸으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1군에서 중용되는 게 조금 웃기긴 하다. 시범경기에서 홍종표를 숏 백업으로 쓰는 것도 조금 웃겼다. 윤도현과 김도영은 학생야구 때 포지션이 숏이었다. 홍종표는 2루와 숏을 돌아가면서 나왔고. 윤도현, 김도영은 유격 불가라면서 홍종표는 어째서 숏 가능인지 궁금하긴 하다. 도대체 연습장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길래 홍종표는 이렇게 중용받는가. 물론 다년간 경험치를 채워주었던 김규성은 반성해야 하는 게 맞다. 몇 년을 백업 1번으로 밀어주는 데도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있으니 말이다.
4. 조상우
조상우에게 국대 마무리 시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1군에서 경쟁력이 있길 바라는 게 잘못된 희망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장현식은 지난 몇 년간 기아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연투도 꽤 많이 한 선수다. 이런 선수가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온 선수라면 최소한 1이닝을 막아주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주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조상우가 장현식만큼 이닝을 먹을 수는 없으니, 장현식이 빠진 자리를 조상우+김기훈+유승철(+김현수)로 막아야 하는데, KT와의 2군 경기에서 김기훈, 김현수, 조대현이 대참사를 낸 걸 생각해 보면 조상우가 이거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24년도 초반 레이스를 주도할 수 있었던 강한 불펜이 25년도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년 기아 타이거즈는 김도영이 없었다면, 우승을 할 수 없던 팀이었다. 대체 선발이 2명, 대체 용병도 몇명이 갈리는 와중에 연투를 버틸 수 있는 강철체력의 불펜과 김도영의 말도 안 되는 타격이 없었다면 우승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경기당 1개 꼴의 실책수를 포함해서, 더더욱 기아는 우승을 했으면 안 되는 팀이었다. 사실 김도영한테 작년만큼만 하라는 것도 말도 안되는 부탁인데, 작년보다 더 잘하길 바라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다. 올해 다른 팀들도 좋은 용병 투수들과 좋은 용병 타자들이 KBO리그에 합류했고, 기아의 불펜이 작년만큼 안 되는 데다가, 기아의 화력도 작년만큼 안된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올해의 현실적인 목표는 우승이 아니고 4강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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