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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금메달 우승, 그리고 단상.

  • 2026.09.28 15:31
  • 야구, 그깟 공놀이/테니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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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시즌부터 KBO 리그에 ABS가 도입되었다.

 

기계는 사람과 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스트라이크 판정 논란에 지쳐 있던 야구팬들에게 ABS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적어도 같은 공이라면 같은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명제에는 반박하기 어렵다. 필자 역시 ABS의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2024년부터 ABS를 경험하고, 그 사이 국제대회에서 다시 인간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마주한 KBO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ABS를 이야기할 때 말하는 '정확성'이란 도대체 무엇에 대한 정확성일까.

 

1. 투수는 누구와 싸우는가

 

야구는 복잡하다. 수많은 세이버메트릭스와 작전, 데이터가 조재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걷어 내고 나면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 남는다. 투수는 타자가 제대로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려 하고, 타자는 그 공을 치거나 골라내어 출루하려 한다. 스트라이크 존은 이 승부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규정한다.

 

여기서 ABS에 관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ABS가 등장하면서 투수에게는 상대해야 할 또 하나의 대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ABS에서는 공이 정해진 존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 타자가 그 공을 칠 수 있었는지, 포수가 어떻게 잡았는지, 투수가 의도한 곳에 정확히 던졌는지는 판정과 관계 없다. 잘 제구된 공이 존을 통과해도 스트라이크이고, 손에서 빠져나간 변화구가 우연히 존의 일부를 통과해도 스트라이크다. 타자를 완벽하게 속여 헛스윙을 끌어내도 스트라이크이고, 정해진 공간에 공의 일부를 스쳐지나가게 해도 스트라이크다. 판정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투수의 관점에서도 과연 아무런 차이가 없을까. 볼 카운트가 몰린 상황, 특히 풀카운트에서 투수는 무엇을 생각할까. 타자를 이겨 낼 공을 던지려고 할까. 아니면 어떻게든 ABS 존에 공을 걸치려고 할까. 물론 그 답은 각 투수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ABS가 투수들의 투구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 국제대회에서 나타나는 제구 문제 역시 ABS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공인구, 마운드, 심판의 존, 상대 타자, 대회 환경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판정 기준이 바뀌면, 선수들이 그 기준에 최적화되는 방식 또한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국내 리그에서 기계가 설정한 존에 적응하는 것이 인간 심판이 판정하는 국제대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2. 정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ABS에 관한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정확성'이다. 그런데 기계의 정확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정확하다는 것인가.

 

야구규칙에서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의 신체와 타격 자세를 기준으로 정의된다. 반면 KBO의 ABS는 이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신장을 일정한 비율로 환산하여 상단과 하단을 설정한다. 2024년 처음 도입됐을 당시 상단은 선수 신장의 56.35%, 하단은 27.64%였고, 좌우는 홈플레이트보다 각각 2cm 넓게 설정되었다. 이후 KBO는 선수와 감독 등 현장의 의견과 데이터를 반영해 2025년부터 상단과 하단을 각각 0.6%포인트 낮췄다.

 

이 사실은 ABS가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ABS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 심판에게 존재했던 자의성을 기계가 제거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계가 판정할 스트라이크 존의 높이와 폭을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기계는 주어진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하나는 기계가 주어진 기준을 얼마나 정확하고 일관되게 판정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에게 주어진 그 기준 자체가 얼마나 타당한가이다. 이 두 문제는 같지 않다.

 

가령 어떤 기계가 자신에게 입력된 기준을 100% 정확하게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해서 그 기계가 적용하는 기준까지 반드시 옳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한 측정과 타당한 기준은 별개의 문제다. 

 

3. 인간의 권위에서 기계의 권위로

 

필자는 ABS가 등장했을 때 많은 야구팬들이 환영했던 이유를 이해한다. 어제는 스트라이크였던 공이 오늘은 볼이 되고, 같은 경기에서도 심판에 따라 존이 달라지는 상황은 선수에게도 팬에게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ABS는 적어도 이 문제에 강력한 답을 제시했다. 같은 기준이라면 같은 판정을 내린다. 이것은 분명 ABS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장점 때문에 우리는 다른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 '기계가 판정했으니 정확하다.' 이 문장은 절반만 맞을 수 있다.

 

기계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준을 정확하게 적용했다는 것과 그 기준이 야구가 원하는 스트라이크 존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BO는 2024년 ABS 도입 당시 기존 심판과 선수들이 인식하던 스트라이크 존과 최대한 유사한 존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규칙상의 홈플레이트 폭보다 좌우를 각각 2cm 넓게 설정했다. 그리고 한 시즌 뒤에는 현장의 의견과 데이터를 토대로 존의 상단과 하단을 다시 낮췄다. 야구 규약집에서 설명하는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의 키가 아닌 타자의 타격폼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KBO는 이미 야구 규약과 다른 존을 설정해서 기계에게 판정을 맡겼다. 

 

규정에 없는 존을 재창조한 것은 큰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수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인간 심판의 자의적인 판정에 지쳐서 기계를 선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계가 내린 판정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기준 자체에 대한 질문까지 금기시된다면 조금 이상한 일이 된다. "ABS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러면 다시 인간 심판에게 맡기자는 말이냐"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심판의 자의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ABS의 존 역시 비판할 수 있다. ABS를 지지하면서 ABS의 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다. 오히려 기계적 공정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기계에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 

 

4. 공정함과 정확함

 

KBO는 ABS 도입의 중요한 목적으로 판정의 공정성 강화를 제시했다. 필자는 이 취지에 동의한다. 모든 팀과 선수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ABS가 인간 심판보다 훨씬 일관된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여기서 '공정하다'와 '정확하다'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잘못 설정된 자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사용한다면 측정은 공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측정값까지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자가 정확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ABS가 해결한 가장 큰 문제는 후자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할 차례다. 그 동일한 기준은 충분히 타당한가. 그리고 그 기준에 적응한 선수들의 야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ABS를 폐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ABS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다.

 

5.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기계는 사람이 정한 기준 안에서 사람보다 훨씬 일관될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일관된다고 해서 인간이 정한 기준까지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ABS의 스트라이크 존도 결국 사람이 설계했다. 그렇다면 ABS는 인간의 판단을 없앤 시스템이 아니다. 인간의 판단을 경기 전에 숫자로 고정해 놓은 시스템에 가깝다. 필자는 그것이 인간 심판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판정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진전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인간 심판에게 요구했던 것과 똑같은 태도를 기계에도 요구했으면 한다. '이 판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왜 이곳까지 스트라이크인가.', '선수들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더 나은 기준이 있다면 수정할 수 있는가.' 

 

인간 심판의 권위가 싫어서 기계를 선택했는데, 기계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질문하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권위를 없앤 것이 아니다. 그저 권위의 모습을 바꿔 놓았을 뿐이다. 기계가 얼마나 정확하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기계에게 가르쳐 준 '정답'은 과연 정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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