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You and Everything else,2025)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서 호흡이 길다. 호흡이 길다는 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혹은 무의미한,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 이유 없이 플레이 타임을 유지하는 영상 문학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를 드라마보다 선호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감명깊게 본 작품이기에, 이 작품에 대한 소회를 남기고자 한다. 앞으로 서술 할 내용은 드라마에 대한 내용을 비롯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각 독자의 선택에 맡긴다.

1. 사진의 의의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는 매체다. 기억이 시간이 지나 흐릿해지고 감정이 바래가도, 사진 속 피사체는 그 순간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바래진 감정을 다시 증폭시키는 장치다. 은중과 상연이 사진을 볼 때마다 오빠 상학에 대한 감정이 더 선명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상학이 사진을 좋아했던 것도 현실의 ‘나’와 내면의 ‘진짜 나’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란, 대상을 내가 원하는 구도의 원하는 프레임에 넣어서 영원히 소장하는 행동이다. 사진은 영원하다. 내가 원하는 구도의 피사체가 사진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쉰다. 과거에 대한 기억, 혹은 기억에 감정이 얹어져 있는 추억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랜다. 사진 역시 빛이 바래고 오염되지만,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남겨진 사진을 보면서 은중과 상연은 오빠 상학에 대한 감정이 더욱 증폭된다. 오빠 상학이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현실에 나타난 나와 진짜 나의 간극을 사진을 통해서 줄이려고 했던 건 아닐까.
2. 은중에게 오빠 상학이란
은중에게 오빠 상학은 자신과 다른 세계의 존재였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 차나 사회적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함과 사유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었다. 인간은 자기보다 성숙한 타자에게 매혹되기 마련이고, 그 매혹은 존경에서 사랑으로 이어진다. 은중에게 오빠 상학은 이상향이자 이상형, 결국 사랑 그 자체였다.
3. 상연에게 오빠 상학이란
상연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기 쉬운 존재였다. 그는 늘 타인의 인정, 특히 엄마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 시선은 언제나 오빠 상학에게만 주어졌다. 라캉의 말처럼, 그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였으나, 그 욕망은 끊임없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상연에게 오빠 상학은 단순한 형이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자아(Ideal)였다. 그는 오빠를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정했다. 이 모순이 상연의 내면을 끊임없이 갈라놓았다.
4. 선배 상학에게 오빠 상학이란
PC통신 속에서 만난 오빠 상학은 현실보다 더 신비롭게 이상화된 존재였다. 실체가 불분명할수록 이상은 더 강하게 투사된다. 선배 상학에게 오빠 상학은 단순한 사람을 넘어선 Ideal이었다. 채팅이라는 건 서로에게 신비로운 감정을 준다. 형체와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부합하는 인물로 재가공하고, 형성한다. 그리고 그걸 곧 실체와 형체로 받아들인다.
5. 은중에게 상연이란
은중은 상연을 부러워했다. 그는 안정된 가정, 존경받는 엄마, 뛰어난 학업 성취,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오빠 상학을 ‘오빠’로 둔 위치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은중에게 상연은 단순히 부러운 존재일 뿐, 이상향은 아니었다. 단지 부러울 뿐이었다.
6. 상연에게 은중이란
상연은 은중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직시했다. 은중은 모성의 따뜻함과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연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은중은 상연이 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Ideal이었다.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처럼, 상연은 은중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넘어서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은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상연은 은중을 부러워하면서도, 은중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모순된 욕망에 사로잡혔다.
7. 은중에게 선배 상학이란
은중에게 선배 상학은 오빠 상학의 그림자이자, 아류작이었다. 그와의 연애는 오빠 상학과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은중이 그를 단순히 ‘선배’라 부른 것도, 그를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8. 상연에게 선배 상학이란
상연은 은중과 달리 선배 상학을 오빠 상학의 아류로 보지 않았다. 그는 오빠의 또 다른 현현, 곧 분신으로 받아들였다. 선배 상학은 상연에게 가족이자 Ideal이었다. 그러나 은중과 선배 상학의 관계는, 상연이 은중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9. ‘무니’라는 이름의 의미
상학이 사용한 닉네임 ‘무니’는 영화 선리기연에서 따온 것이다. 주성치의 첫사랑 백정정(막문위–무니), 그의 조력자 이당가(오맹달), 그리고 주인공 지존보. 은중은 어쩌면 지존보였을지 모른다. 오맹달은 은중의 삶 속에서 상연과 오빠 상학의 의미를 전하는 매개체였고, 결국 은중은 오빠 상학뿐 아니라 상연이 주는 의미도 깨닫게 된다.
10. Ideal로서의 오빠 상학
오빠 상학은 모두에게 Ideal이었다. 그러나 Ideal은 언제나 인간을 배반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요는 결국 그의 삶을 옥죄었고, 그 결과 주변인들의 삶까지 파괴했다. 특히 상연에게 그 무결성은 치명적이었다. 형(形)의 결점은 다른 이에게는 사소했지만, 상연에게는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균열이었다. 그리고 오빠 상학의 결점으로 인해, 상연이 선배 상학에게 느끼는 Ideal의 감정이 더욱 강화된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던 Ideal, 오빠 상학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혹은 드러낼 수 없는 본인의 생각과 정체성 때문에 갈등한다. 그리고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남은 가족들의 삶은 파괴된다. 그리고 그의 명예를 지켜주고자 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그 파괴는 점점 몸집을 불려서 결국 상연의 삶을 파괴하고, 상연은 은중의 삶을 파괴하려 했다. 이런 연쇄적인 삶의 파괴는 결국 돌고 돌아서 상연에게 다시 흘러 들어가 상연은 그 모든 것을 안고 심연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Ideal 또한 완벽하지 않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오빠 상학의 결점을 직접 본 같은 촬영 모임의 누나는 그 결점을 이해해 주었다. 선배 상학 역시 오빠 상학의 결점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래서 오빠 상학의 결점에 그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혹은 소소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Ideal로서의 무결성을 원하던 상연에게 오빠 상학의 모습은 본인의 인생과 가족의 인생 모두를 혐오하게 만드는 충분한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11. Ideal의 환상
우리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이 지닌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상의 모습으로 치환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결성을 지닌 존재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그 대상이 무결성을 지닐 수 있도록 신비롭길 바란다. 이런 관계는 인간의 여러 관계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가족, 친구, 연애, 기타 많은 인간이 형성하는 관계에서, 각 인간은 내가 좋아하는 대상의 무결성에 집착한다. 그래서 오빠 상학은 불쌍하다. 그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무결성을 강요당했고, 죽은 이후에도 그 자신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2. 가진 자의 외로움
많은 것을 가진 듯 보이는 사람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다. 상연이 바로 그러했다. 그녀는 많은 걸 가진 듯했지만, 자기 자신은 갖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걸 가진 자신을 파괴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보다 외로운 존재였다.
13. 맺음말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인간이 Ideal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허상과 파괴,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을 치열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 상연의 내면은 우리 모두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누구나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끝내 자기 결핍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방황한다. 상연은 그 보편적 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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