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The Odyssey, 2026)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건강 등 사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이런 단어들의 나열은 의미 없다.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 또한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우리가 가졌다가 다시는 갖지 못하는 것, 남은 하나는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 그리고 우리는 가졌다가 빼앗긴 것들을 정말 간절하게 원한다.
오디세우스는 왜 참전했을까? 오디세우스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왕이 참여하라고 해서? 아니면 그저 시대의 흐름이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일리아스에서는 전쟁에 참여하면 20년간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오직 오디세우스 개인의 선택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통해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인간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명예 그리고 명성을 '부'보다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후세대에 남길 수 있는 무형의 가치, 즉 명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준다. 명성을 얻은 오디세우스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누군가는 죽음을 통해 불사의 존재로 후세대에 영웅으로 영원히 남고 싶어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선택을 했다. 오디세우스는 그저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디세우스가 방황하는 동안 그는 이미 가지고 있었던 고향과 가족을 빼앗겼다. 세이렌의 노래를 통해 오디세우스는 고향과 가족을 더 그리워하고, 영원히 빼앗길까 봐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가 본인이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노래였으며, 실제로는 본인이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말한다.
이 지점에서 일리아스의 내용을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전쟁에 참여하면 20년간 방황할 것이며, 그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신탁을 들었다. 그러므로 오디세우스에게 '귀향', 즉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란 내가 영원히 빼앗기는 것이 될 수 없다. 잠깐 내 손을 떠났을 뿐, 다시 내가 움켜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향'은 오디세우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될 수는 있으나, 간절히 원하는 '유일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오디세우스는 사냥할 때, 일부러 활시위를 튕겨서 사냥감이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최소한 사냥감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 주어, 사냥감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나에게 달려들거나, 나에게서 도망가거나. 사냥은 사냥꾼이 사냥감 모르게 다가가서, 일방적으로 공격하여 사냥감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사냥을 명예로운 결투처럼 생각했다.
'트로이의 목마'는 이런 오디세우스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아니, 오디세우스가 스스로를 배반한다. 스스로를 기만한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 스스로를 숨겼다. 존재와 목적 모두를 숨겼다. 그리고 트로이인들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성 안으로 들이고, 결국 학살당한다.
오디세우스는 본인의 믿음을 스스로 배신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본인의 믿음뿐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더럽혀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진실로 갈망하는 건, '속죄'다. 속죄를 통해 자신의 원칙을 배반하지 않았던 과거, 혹은 그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계책을 낸 지휘관에서 사냥감에게 활시위를 튕기던 정의로운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속죄', 즉 전쟁에 참여하기 전의 오디세우스는 곧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이 된다. 한때는 가지고 있었으나,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고향인 이타카에 도착할 수는 있어도, 그곳을 떠나기 전의 오디세우스로는 돌아올 수 없다. 트로이인을 기만하고, 신을 기만하고, 본인조차도 기만한 트로이의 목마는 이제 오디세우스라는 이름과 함께 모든 세계에서 울려퍼지고,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에서 오디세우스가 진실로 슬퍼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디세우스는 분명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으나, 본인이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가는지를 마주하기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는 서쪽으로 떠난다. 해가 지는 곳.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해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스스로를 배반한 어두운 오디세우스를 속죄하기 위해서 영원히 해를 따라다니기 위해서일 것이다. 두 번째 해석으로는 서쪽이라는 방향은 해가 지는 곳이다. 해가 져야만 비로소 달이 떠오른다. 해와 함께 찬란한 역사와 문명, 그리고 인간성을 뽐내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서쪽으로 가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믿던 질서가 더 이상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하는 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용서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용서받을 필요조차 없었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로터스 잎을 먹던 오디세우스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죄를 씻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죄를 지었다는 기억 자체를 잊고 싶은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거대한 참회록을 지켜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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