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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야기

요즘 것들은..

by 플루언스정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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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직업적 특성상, 다양한 연령대와 컨택트 한다. 10대 학생, 나와 비슷한 세대지만 꽤나 다르다고 느끼는 20~30대, 바로 윗세대지만 또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40대 초반, 10대 학생들의 부모세대인 40~50대 학부모님들, 그리고 조금 더 연륜이 쌓여있는 치열했던 인생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스스로 치열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60~70대 이상의 어르신들. 이렇게 넓은 베리에이션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같은 종이, 같은 국적을 지니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는데 그네들이 지나온 세월에 따라 생각과 사상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종종 나를 놀라게 만든다.

 

 최근에 어떤 어머님과 만나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어머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월드컵의 흥분과 6평이 공존한, 고3 학생들에게는 들뜬 마음과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던 2010년 6월초였다. 학생과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어머님은 언제나 거실에서 TV소리를 줄이고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게 코튼소재로 만든 실내 슬리퍼를 신고 아이가 수업은 열심히 듣는지 궁금해하면서 닫힌 문 앞을 서성이던 분이셨다. 딸아이를 가진 어머님답게, 조심스럽게 하지만 언제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문 앞을 서성이던 어머님에게 문을 열고 수업해도 괜찮은지 눈치껏 먼저 여쭈어보았고 그렇게 나는 그 어머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 당시에 어머님과의 대화에서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이른 나이에 결혼을 일찍 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주부로 오랜 기간 살아왔고, 정말 내 자식이어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이의 얼굴을 보면 아무렇지 않게 풀린다면서 결혼을 하려거든 일찍 해서 아이를 여러 명 낳으라는 조언을 해주셨었다. 그 이후 벌써 10여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필자는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았고(못한 건가?), 필자가 가르치던 학생은 올해 결혼을 한다면서 나에게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참석한 결혼식에 어머님이 정말 걱정스럽지만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으셨고, 항상 그래왔듯, 또다시 결혼과 자녀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렇게 결혼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남녀간의 애정에 대한 확인이나 가족의 확대 및 재생산의 장이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짙었다.(물론 필자의 부모님도 항상 그렇게 말씀하신다.) 어딜 가나 "선생님은 언제 결혼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필자는 항상 "제가 감히 결혼을 해도 될까요?"라고 답변을 한다. 필자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결혼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들 본인은 준비가 덜 됐다면서 언젠가는 준비가 될 거고, 그러면 결혼을 하겠다는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서 "야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약속보다 더 공허하고 기약 없는 약속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필자도 항상 저렇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꽤나 궁색한 입장이 되어버린다. 또한 필자의 윗세대과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상황이 생기면 준비가 다 된 결혼은 있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으며, 한참 윗세대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으면 결혼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라는 답변을 받게 된다. 여기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같은 종이, 같은 국적을 지니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지만, 세월과 시대적 배경이 사람의 관념을 깎고 깎아서 비슷하게 만드는구나."

 

 어릴때 조부모님 손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필자는 항상 할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따뜻한 집이 있고 밥이 있으니 최소한 네가 굶지는 않을 거 아니냐. 그런데 왜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는 거지?". 그분에게는 학원의 필요성과 주변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의 핑계일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나이가 되니 할아버지께서는 "먹고 살만 하면 됐지 쉬는 날이 그렇게 중요하고, 퇴근시간이 그렇게 중요하냐?" 조부모님 세대는 말 그대로 먹을 것이 걱정이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서 큰 조건은 [밥을 먹을 수 있냐, 없냐] 였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 밥을 먹을 수 있으면, 혹은 밥을 굶지 않는 직업이 있으면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현재 MZ세대는 이론상, 편의점 알바와 일반적인 직장인이 같은 시간을 노동을 하게 되면 비슷한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돈도 중요하지만 돈 이외의 것, 그러니까 단순하게 먹고살만한 돈을 버냐, 못 버냐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세부적인 지표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윗세대 입장에서는 저렇게 따질 것 다 따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어떻게 살 거냐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때는 굶지 않고 먹고사는 것이 시대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건 당연한데, 어떻게 먹고 사는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보니 양 세대가 평행선을 달리며 "요즘 것들은..."과 "어휴, 알지도 못하는 늙은이들 답답하네."로 갈등이 증폭되는 것 같다. 

 

 돌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떤 자리에 놓여져 있고, 그 돌을 어떻게 깎아 내는가는 바람이 많이 부는 산꼭대기인가, 물이 흐르는 강가인가에 따라서 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닳고 닳고 또 닳아서 깎여나간다. 그렇기에 처음 모습은 모두 다른 돌이었더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놓여 있으면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간다. 산꼭대기에 있는 돌은 강가의 돌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가의 돌은 산꼭대기의 돌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그렇게 서로 다른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단지, 산의 입장을 강가에 있는 돌에게 강요하지 말고, 강의 입장을 산에 있는 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다 같은 돌이기에, 어쩌면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을 테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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