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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그깟 공놀이/공인구

야구는 타자 놀음인가, 투수 놀음인가

by 플루언스정 202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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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투수가 먼저냐, 타자가 먼저냐에 대해서 논쟁하는 걸 즐겨했다. 그리고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시 야구는 타자가 먼저냐, 투수가 먼저냐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해당 내용으로 포스팅하려고 한다. 

 

 <타자가 먼저다>

 - 투수가 아무리 잘 막아봤자 점수가 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투수가 먼저다>

 - 타자가 아무리 점수를 내봐야 투수가 막지 못하면 이길수가 없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 필자는 확률에서의 판단과 실제 야구에서의 판단을 가지고 글을 작성하겠다.

 

1. 확률에서의 판단

 야구는 불공정한 운동장이다. 3할을 칠 수 있는 타자는 타격에 눈을 떴다, 즉 타격에 통달한 타자라고 이야기한다. 투수상대로 공을 10번 중에 3번을 쳐서 페어지역에서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보냈는데, 이겼다고 한다. 그리고 좋은 타자라고 이야기한다. 점수가 나는 건 이것보다 더 어렵다. 어떤 형식으로든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가 가야하고, 그 과정에서 또 10번중에 3번을 이겨내야 한다.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가? 

 

 타자는 10번 중에 3번만 이겨내도 좋은 타자고, 투수는 10번중에 7번을 막아야 본전이다. 투수가 3할 타자 두 명에게 연타를 맞을 확률은 (3/10*3/10)이다. 그리고 속칭 "좋은 타자" 두 명이서 특정 투수에게 연타를 칠 수 있는 확률 또한 (3/10*3/10)이다. 더 이상 무언가 설명이 필요한가? 좋은 타자와 좋은 투수가 있다면 투수를 고르는 게 먼저다. 

 

2. 야구에서의 판단

 야구에서의 판단은 좀 더 복잡하고, 통찰력이 필요하다. 좋은 투수는 WHIP 즉 이닝당 출루 허용률이 1.2를 넘어가지 않는다. 안타든 볼넷이든 몸에 맞는 공이든 이닝당 1명의 주자가 나간다는 말이다. 야구는 베이스가 총 4개가 있고, 그중에 1루 베이스에 출루를 하거나, 2루 베이스에 출루를 한다고 0.25점이나 0.5점이 적립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무조건 나간 주자, 혹은 타자 본인이 홈을 밟아야만 득점이 인정되는 시스템이지 않은가. 

 

 좋은 투수는 10번 중 7번을 타자를 상대로 이겨낸다. 그 말은 주자가 나갔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구팬들이라면 "잔루 만루"라는 단어를 극도로 혐오할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타선은 점이 아니고 선이기 때문에 분명 잘 치는 타자들 앞에서 주자를 모아두려고 할 것이고, 그 과정이 강한 2번 타자, 전통적인 타순에서 클린업을 제외하고 펀치력이 있는 6번 타자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수많은 "잔루 만루"와 "변비 타선"이라는 용어가 미디어에 노출이 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투수는 타자를 높은 확률로 이겨내기 때문이다. 

 

 MLB에서는 단기전과 페넌트 레이스를 비롯해서 강한 프론트 라이너들을 어떻게 무너트릴 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실제로 선발 투수가 그날따라 유독 긁히면 상대팀 입장에서는 그 경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뜨고 코베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MLB는 좋은 투수들을 상대로 많은 단타를 통해, 혹은 연타를 통해서 점수를 내는 것보다 풀 스윙을 갈겨대서 그중에 한 개라도 홈런이 되면 일단 점수를 얻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배럴타구에 이은 발사각 혁명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어떤 리그가 됐든, 컨텐더 팀들은 선발 투수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세이버 메트리션들이 매번 투승타타는 쓰레기다라고 주장하지만, 타자는 타점을 위해서 노력하고, 투수는 점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것은 야구의 본질이다. 투수가 점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면 팀의 승리와 개인의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논외로 그래서 투승타타는 쓰레기다라고 주장하는 세이버 스탯에 매몰된 몇몇 세이버 메트리션들은 야구의 본질을 부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야구에 홈플레이트가 왜 필요한가. 피겨처럼 예술점수나 주면 되는 거지) 타자는 전 경기를 출장할 수 있으나 안타를 칠 확률이 30%다. (홈런은 당연히 그보다 더 비율이 낮아서 역사상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거포라고 해도 10% 내외로 형성된다.) 심지어 타자들의 각 타석에 대한 확률은 각각 독립적인 확률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 대략 40 홈런 타자가 4타석 안에 홈런을 칠 확률은 (0.09*0.09*0.09*0.09)인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팀은 좋은 선발투수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사실 단기간에 팀의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확실한 플러스 피치 변화구가 있는 선수를 불펜에 대기시킨 다음 열심히 등판시키면 된다. 실제로 김경문과 김성근의 성공 이후로 이런 방식의 투수소모가 KBO리그에서는 성행했었다.

 

 1) 일단 포심이 좋은 선수를 지명한다

 2) 그다음 슬라이더나 커브 중 무언가 괜찮아 보이는 변화구(플러스 피치 변화구)가 있는지 확인한다

 3) 레퍼토리를 추가하면 좋으나,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당장 사용할 수 없으니 일단 불펜에서 보직을 시작한다

 4) 그렇게 지명 후, 빠른 시일 내에 1군에 올라와서 불꽃처럼 2~3년 버티다가 재기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좋은 자질의 선수를 뽑아놓고, 왜 이런 식의 운영을 했을까? 10번 중에 투수는 7번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벌떼 야구가 성행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김광현, 양현종이다. 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선발을 위해서 2군에서 레퍼토리를 가다듬고 충분히 연습을 해서 피칭디자인을 완성시킨 다음에 1군에 올라오는 팀은 LG밖에 없다. 그리고 한화가 최근에 문동주를 그렇게 육성했고. 이것만 보더라도 투수와 타자 중에서 왜 투수의 값어치가 더 높은지 알 수 있지 않은가? 타자는 3번 성공하고 투수는 7번을 막는다. 그러므로 팀의 성적을 위해서 투수를 소모품처럼 사용하더라도 야수를 당겨 쓰는 것보다 리스크가 작다.

 

 

3. 결론

 그러므로 투수가 먼저냐, 타자가 먼저냐의 다툼은 당연히 투수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성적을 위해서는 투수가 먼저이나 팀의 문화를 잡거나, 팬 서비스와 같은 부가가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역시나 강타자인 야수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단기전에서는 투수가 우선, 페넌트레이스에서는 타자가 우선 이런 개념이 아니고, 단기전이든 장기전이든 성적을 위하면 투수가 우선이고, 팀의 인기도를 위해서는 야수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00년대 후반에 롯데는 꽤 좋은 타자들로 라인업을 구성했으나 성적이 좋지 못했고, 99년도 해태는 강한 타선을 구축해 놓고도 포스트시즌을 가지 못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강한 투수력의 힘으로 상대를 억제해 내면서 우승을 해냈으며, 상대는 항상 좋은 팀타선을 가지고 있던 삼성이나 빙그레였다. 장효조와 이상윤, 장종훈과 이강철. 누구의 이름값이 더 높은가. 아무래도 장효조와 장종훈이 이상윤과 이강철보다는 더 유명한 선수들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은 이상윤과 이강철의 것이었다. WBC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자랑하는 그 좋은 타자들은 일본의 투수를 뚫지 못했다. 반면에 한 수 아래의 일본 타자들은 켈리를 난타하고 미국의 투수진을 유린했다. 

 

 프론트 라인끼리의 맞대결에서 우위를 가지는 팀은 단순하게 실점이 더 적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점을 억제해 내고, 주도권을 쥐는 것, 그리고 그 주도권을 통해서 내 뒤에 나올 투수들의 퀄리티가 달라지는 것 등 설명을 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야구는 흐름이고, 선수가 하는 것이다. "주도권"과 "선취점"이 왜 중요한지 모르는 야구팬도 있을까? 그런데 어째서 선취점을 억제해 내야 하는 투수에 대한 평가가 박할까? 야구는 일단 투수가 공을 던져야 시작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예스러운 문장을 굳이 가져올 필요도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무조건 투수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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