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 그깟 공놀이/연식구

플라이볼 혁명 - 발사각의 허상

by 플루언스정 2023. 11. 3.
728x90

 플라이볼 혁명, 속칭 발사각은 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특정 문화나 특정 이론이 바다를 건너오게 되면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문화나 이론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무작정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변질된 문화나 이론에 대한 반대 주장은 언제나 빛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플라이볼 혁명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야구에서 타격이란 "방망이에 공을 맞혀서 빈 공간에 공을 보내는 행위이다." 야구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오면서 관습적으로 타구가 많이 날아가는 위치에 전통적인 포지션의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구종과 코스, 그리고 타자의 스윙 궤적을 통해서 예상되는 낙구 지점에 포지션 상관없이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는 게 현재 유행하고 있는 시프트이다. 그러면 완벽한 타구란 수많은 수비수들에게 잡히지 않고 "빈 공간"에 떨어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수비수가 없는 대신 팬들이 하나 가득 들어차있는 지역인 담장을 넘기면 된다라고 생각한 게 이론가들이 생각한 완벽한 타구다. 플라이볼 혁명이 발생하기 전에 MLB는 OPS형 타자라는 이론에 심취해 있었다. "타격을 하는 이유는 점수를 내기 위한 준비 단계이고, 그러면 안타를 쳐서 1루를 가도 되고, 볼넷을 얻어서 1루를 가도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홈런을 치면, 혹은 2루타 한방이면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야구에서 통용되던 오랜 격언인 "에이스급 투수에게는 연타로 점수를 낼 확률이 낮다." 그리고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이 세 가지 생각이 합쳐져서 발생하게 된 이론이 플라이볼 이론이다.

 

 플라이볼 이론은 간단하다 "공을 띄워서 페어존에 보낼 수 있는 스윙 궤적을 만들어라." 그 말을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쓰면 "발사각을 적당하게 높여서 비거리를 늘려보자. 그래서 그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겨보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을 띄워서 페어존에 보내려면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할까?

 

 1. 방망이로 공의 밑부분을 쳐서 회전을 먹이면 비거리가 늘어난다.

 2. 상체를 뒤쪽으로 기울여서 몸통을 회전시켜서 방망이로 공을 퍼올리듯이 스윙한다.

 

 방법론 중 1번은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일단 눈으로 공을 봐야 하며, 공의 궤적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순간적으로 공이 어느 코스로 들어올지 결정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상대 투수가 던지는 구질은 어느 정도 다운-무브먼트를 보여주더라라는 계산을 끝낸 다음 낮은 코스는 퍼올리고, 높은 코스는 찍어 쳐서 공에 회전을 먹인다. 그러니까 타자가 좋은 선구안, 구종에 대한 좋은 예측력,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공을 방망이를 이용해서 쳐야 하니 좋은 협응력, 구종과 코스별로 공의 밑부분을 칠 수 있는 좋은 테크닉, 그리고 장타를 위한 좋은 펀치력. 이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는 속칭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각 리그를 기준으로 이 정도를 해낼 수 있는 타자는 굳이 홈런을 치기 위해서 스윙을 하지 않아도 홈런이 충분히 나온다. 마치 이승엽처럼.

 

 방법론 중 2번은 1번에 비해서 여러 의미로 훨씬 쉽다. 일단 마인드셋부터 [내가 원하는 존에 공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설사 루킹삼진을 당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으니 발사각을 만들어놓고 최대한 강하게 쳐서 일단 외야로 공을 띄워서 보낸다.]라고 생각해 두고, 상체를 적당히 기울여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도를 통해서 몸통 회전을 하고 강하게 공을 띄워서 보낸다.(1번과 2번에 모두 필요한 공을 보고 코스를 판단할 수 있는 선구안은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방법론은 꽤 간단하다.)

 

 여기까지 봤을때는 2번이 응당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면 이제는 야구의 목표가 강하게 쳐서 홈런을 많이 치면 되는 거 아닌가? 투승타타는 옛날 고리짝 시절에나 하던 이야기고 이제는 WRC+, OPS+로 선수를 줄 세우는 시대니까, 당연히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장타와 출루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왜 2번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방식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타격이란 무엇인가?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맞추는 행위이다.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맞추려면 일단 눈으로 공을 봐야 한다. 어떤 코스로 들어오는 지를 알아야 방망이로 날아오는 공을 칠 것 아닌가. 상체를 뒤로 기울이면 회전운동을 할 때 그만큼 고개도 뒤로 젖혀져 있으니 눈에서 바라보는 방향감각에서 왜곡이 생긴다. 강하게 회전운동을 하면서 머리가 흔들리는 것은 덤이다. 공에 내 시선이 집중되지 않았는데 공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그래서 MLB에서 플라이볼 혁명 이후 타율이 급감한 원인이 되었다. [상체를 젖혀서 강제로 발사각을 만드는 과정에서 머리가 뒤로 젖혀져서 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된다.] 이게 첫 번째 문제다.

 

 두번째 문제는 그림과 함께 보도록 하겠다.

 

 

  이정후 선수의 타격자세이다. 그리고 이정후가 이렇게 상체를 젖혀서 친 공의 코스는

 

 

 완전 하이존이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하이존에 들어온 포심이다. 이정후는 프로필 상 키가 185cm인 동양인 치고 작은 선수는 아니다. 요즘은 김지찬, 김선빈처럼 160대 선수들도 꽤 많이 보이며 황대인, 이창진처럼 키가 170 초반인 선수들도 꽤 많이 있다. 이정후는 185cm이기 때문에 저 높이의 공을 상체를 젖혀서 각도를 만드는 와중에 정확하게 컨택을 해냈다. 과연 170 초반의 선수들도 비슷한 코스의 공을 상체를 젖혀서 발사각을 만들 수 있을까? 상체를 젖혀서 발사각을 만드는 건 몸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먼저 양 어깨가 회전을 하는 도중 평행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강한 회전운동을 하려면 몸의 코어근육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강하게 치는 도중에 옆구리 근육에 대한 대미지도 착실히 누적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보디 밸런스가 좋아야 회전축이 기울어져 있는 와중에 회전운동을 전진운동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플라이볼 혁명이 일어난 이후 2021년도 기준으로 MLB 야수의 평균 키는 6피트 1인치로 185cm이다. 동양인치고 호리호리하고 체격이 큰 이정후가 메이저에 가면 평범한 신체사이즈를 지닌 평균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다. MLB 선수들의 기준에 맞는 타격 이론이 KBO에 들어오면서 아무런 비판과 보정 없이, 그저 발사각을 위해서 상체를 젖히고 타격하는 선수들이 아주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이론에 대해서 비판과 보정 없이 받아들여서 10 홈런 치던 선수가 30 홈런씩 쳐낸다면 굳이 특정 이론과 그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선수들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을 할 필요는 없으나,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이론에 심취해 있다면, 본인에게 특정 이론과 기술 혹은 문화가 맞는지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발사각 이론, 즉 플라이볼 혁명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론이 아니고, 특정 조건이 성립이 되는 몇몇 선수들에게 해당이 되는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홈런 4~6개를 위해서 타율 3~5푼을 포기한다면 과연 그 선수는 생산성이 좋은 선수인가? 아니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인가? 발사각을 통해서 슈와버처럼 47 홈런에 104타점을 기록한다면 분명히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지 못한다면 굳이 동양인의 체격과 체형에 맞지 않는 발사각에 연연해서 연습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