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구, 그깟 공놀이/테니스공

2023년 KBO리그 우승 - LG Twins(엘지 트윈스)

by 플루언스정 2023. 11. 14.
728x90

 

 먼저 엘지 트윈스의 우승을 축하한다. 필자의 지인 중에 엘지의 오랜팬이 있는데, 어제 엄청 좋아하더라. 김용수가 던지고, 그 공이 김용수에게 다시 돌아가서 손을 번쩍 들고 좋아하다가 1루에 던져서 아웃시키는, 꽤 오래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리뉴얼할 수 있다는 게 엘지팬 입장에서는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29년 만의 우승이니까 아무래도 학창 시절에 우승을 봤던, 혹은 청년 시절에 김용수의 환호를 봤던 팬들은 이제 중, 장년이 되어서 어린 시절과 다른 의미로 흘러간 세월만큼 깊어진 주름과 깊어진 감정으로 우승 세리머니를 봤을 것이다. 

 

 이번 코시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크게 느낀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1. 역시 우승을 해본 사람은 다르다.

 2. 역시 체인지업은 믿을만한 구종이 못된다. 

 

1. 역시 우승을 해본 사람은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는 오지환이 가져갔지만(롤렉스도 아마도 오지환이 가져갔을테지만) 시리즈 내내 경기를 보면서 눈에 띄는 건 박해민이었다. 특히나 코시 5차전은 박해민 혼자서 경기를 가져왔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압도적인 "유관행동"들이 눈에 띄었다. 같이 삼성 왕조를 이룩했던 김상수는 숏 자리에서 박해민을 어떤 감정으로 지켜봤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눈에는 박해민의 유관력이 김상수의 유관력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이유로 박병호의 무관행동도 박해민의 유관행동과 너무 대비되었다. 

 

2. 역시 체인지업은 믿을만한 구종이 못된다

 역사적으로 체인지업, 그러니까 체인지 오브 페이스 구종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무언가를 이룩하기 보다, 다른 구종들과의 결합(대부분 포심)을 통해서 위력을 내는 구종이다. 요즘 들어서 임기영, 고영표 같은 투수들이 체인지업 구사 비율을 어마어마하게 높이면서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대부분의 전통적인 사이드암, 언더핸드 계열의 투수들은 커브와 씽커로 구질의 다양화, 그러니까 공이 휘는 방향을 반대로 설정하여 타자를 상대했다. 그래서 사이드암, 언더핸드 계열의 투수들은 좌타자에게 약할 수밖에 없었다. 씽커는 공이 너무 잘 보이고, 커브는 좌타자가 그냥 넓게 휘두르면 스윙 궤적에 공이 무조건 걸리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KBO의 최근 트렌드는 리즈 시절 임창용, 신용운, 권오준처럼 빠른 구속을 바탕으로 브레이킹볼을 섞고 씽커로 범타유도를 하던가, 고영표, 임기영처럼 체인지업과 커브 혹은 슬라이더를 섞어서 던지는 투수들이 남게 되었다. 이제는 이강철, 김현욱, 조웅천, 박석진 같은 느낌으로 포심, 씽커, 커브의 레퍼토리로 구질을 통해 타자와 승부를 하기보다는 그냥 같은 구종으로 무브먼트와 커맨드를 통해 승부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추운 날씨가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써클 체인지업, 옛날부터 야구를 본 사람들은 OK볼이라는 명칭으로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 구종은 최소한 손가락 3개, 많으면 검지의 옆면까지 손가락 4개를 훑고 지나가는 구종이다. 그래서 실제로 익히기 어려운 구종이고, 그날그날 감에 따라서 공의 무브먼트와 제구가 왔다 갔다 하는 아주 난도가 높은 구종이라고 볼 수 있다. 날씨가 추우면 당연히 손가락이 곱기때문에 서클 체인지업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 그리고 고영표는 실제로 가을 야구 내내 제구가 좋지 못한 모습이었고 어제는 올해 본 고영표 중에서 제구가 제일 안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체인지업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포심과 최소한 다른 플러스 피치 브레이킹 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공인구 이슈가 있는 국제대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대회에서는 서클 체인지업 투수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 KBO의 공인구는 머드질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손에 쩍쩍 달라붙는 공이고,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공인구는 대부분 국내 공인구에 비해서 공이 미끄럽다. 그렇기에 서클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들, 특히나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이 국제대회에서는 국내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을 팬들에게 납득시키면서 선수를 애초에 뽑지 않는 것과 뽑아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운영위나 기술위 입장에서 어떤 방법이 더 쉬운지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강철은 투수 출신의 감독인데, 이번 시리즈는 좋게 말하면 선수에게 맡기는 야구였고, 나쁘게 말하면 운에 맡기는 기도메타의 야구였다. 물론 플옵에서 투수 소모가 많았고, 강백호가 없어져서 원래는 대타 카드로 사용했어야 하는 문상철이 주전 라인업으로 올라가면서 야수의 활용도도 분명히 떨어졌었다. 이번 코시 5차전은 지면 시리즈가 끝나는 상황인데 고영표의 난조를 보면서도 투수를 준비하지 않았던 게 과연 내일을 보는 경기 운영이었는지, 생각이 없는 운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은 엘지가 우승했고, 엘지팬들에게 심심한 축하를 보낸다. 

728x90